사람이 죽은후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증인은 사람이 죽으면 소멸 되다고 가르침니다. 여호와증이 인용하는 성경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7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었기 때문에 호흡이 끝나면 흙으로 돌아간다 전도서 9:5-6 "... 죽은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시편 146:3-4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 소멸하리로다" 에스겔 18:4 "...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요한복음 3:13 "... 인자외에는 하늘에 올라간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고린도전서 15:50,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으면 그날로 소멸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고통이 있는 지옥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지옥은 상징적 입니다. 오늘은 성경 토론에서는 히브리어인 스올 Sheol과 헬라어말인 헤이데스 Hades를 게헨나 Gehenna 공부하기를 먼저 합니다. 스올, 헤이데스, 게헨나의 이해 스올 보통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스올 (구약 히브리어)/헤이데스 (신약 헬라어)와 게헨나 (신약 헬라어) 에 혼동을 하는 이유는 이 단어들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뜻이 분명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여호와증인의 가르침에 의하면 시올/헤이데스는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무덤이고 게헨나는 영원히 멸당하는곳으로 그곳은 부활의소망이 없는곳 입니다. 그럼, 스올, 하데스, 그리고 게헨나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주제는 사실 너무나 광범위하여 책을 한권써도 될만한 분량입니다.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Unger 사전에 의하면 스올은 일반적으로 죽은자들이 있는곳이라고 정의를 하였습니다. 스올의 전체적인 말의 뜻은 무덤이란 말도 포함 되지만 무덤 보다는 “죽은자들이 있는곳” 이란 뜻 입니다. 그러므로, 이 스올은 일반적으로 의로운자나 악한자가 죽어서 있는곳을 뜻합니다. 시 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성경의 계시는 점진적 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신약성경 처럼 지옥을 개념이 뚜렸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악인이 받는—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지옥 (게헨나)의—심판을 볼수 있습니다. 이사야 33:4 시온에서 죄인들이 무서워하고+배교자들이 두려움에 떤다.‘우리 중에 누가 태워 없애는 불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우리 중에 누가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헤이데스 헤이데스는 구약의 시올과 거의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16:22-27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 [헤이데스] 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마태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 [헤이데스]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게헨나 게헨나는 본래 "힌놈의 계곡"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은 쓰레기 소각장이고 가난한 자의 시체와 범죄자의 시체가 버려진 곳으로 늘 구더기가 들 끌고 시체와 쓰레기를 태우는 불과 연기가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이 게헨나를 말씀하실때는 영원한 멸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것이지 실제적인 영원한 형벌일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게헨나를 죄를 진후 형벌의 장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영원토록 고통이 있는 지옥에 보낼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람은 죽는 즉시로 소멸 되기 때문에—영과 육의 분리가 없이—지옥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때 한쪽으로만 치우쳐 읽게되면 오류를 범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사랑의 하나님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반듯이 벌하십니다. 모든 죄를 반듯이 벌하십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 갈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판사도 죄를 묵과하면 공의의 판사가 아니듯 하나님께서 죄를 묵과하신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신분이기에 모든 죄에 대하여 반듯이 무서운 심판을 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 되심을 분명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 34:7 (신세계번역) 7 그는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충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내고,+ 잘못과 범법과 죄를 용서해 준다.+ 그러나 죄를 지은 자들을 결코 처벌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지 않고,+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아들과 손자를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처벌할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 사람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벌이 죽음 일까요? 소멸일까요? 사람이 죽어서 소멸되어 없어진다면 더 중한 형벌이 있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죽임을 당하는것 보다 더 큰 형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있다고 히브리서는 말씀하십니다. 히 10:26-29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요한복음 5:27-29 요 5:27-29 (신세계번역)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심판하는 권한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사람의아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십시오. 기념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9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에,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에+ 이를 것입니다. (개역번역)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킹제임스번역) 5:28 Marvel not at this: for the hour is coming, in the which all that are in the graves shall hear his voice, 5:29 And shall come forth; they that have done good, unto the resurrection of life; and they that have done evil, unto the resurrection of damnation. 5:30 I can of mine own self do nothing as I hear, I judge: and my judgment is just; because I seek not mine own will, but the will of the Father which hath sent me. 질문 합니다. 무덤에 누가 묻혔나요? 죽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무덤에는 의로운 사람도 있고 또한 악한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부활하나요? 의를 행하다가 죽은자가 부활 합니다. 그 뿐인가요? 또 누가 부활하나요? 예수님은 악을 행하다가 죽은자도 부활합니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질문합니다. 악을 행하다가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힌자는 이미 소멸된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한 행위를 하다가 죽은 사람은 죽어서 소멸 된것이 아닌가요? 그들에게는 부활이 없는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에 이른다고 말씀하시지요? 죽음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것을 생각이 되었고 죽음 자체가 끝으로 생각을 하였는데요? 악을 행한 자는 부활하여 저주의 심판을 받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네요 (...done evil will rise to be condemned.") 그런데, 여기서 악을 행하는자가 누군가 하는 질문이 있을 것 입니다. 우리가 다 알지만 성경은 성경이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요한 1서에 보면 악을 행하는자가 누군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요한 1서 3:7-12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8절을 보시면 죄를 짓는자가 악인입니다. 가인과 같이 그 동생을 쳐 죽이는자가 악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같이 악을 행한 자는 죽었다가 예수님의 재림때에 심판의 부활을 받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설명 하자면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고 악을 행하다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자도 예수님의 재림하실때에 부활을 하여 예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14:9-11 아래의 구절을 보면 사람이 죽은후에 소멸되지 않음을 볼수 있습니다. 계 14:9-11 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Revelation 14:9-11 9 A third angel followed them and said in a loud voice: "If anyone worships the beast and his image and receives his mark on the forehead or on the hand, 10 he, too, will drink of the wine of God's fury, which has been poured full strength into the cup of his wrath. He will be tormented with burning sulfur in the presence of the holy angels and of the Lamb. 11 And the smoke of their torment rises for ever and ever. There is no rest day or night for those who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or for anyone who receives the mark of his name." 예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던 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결국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는데 언제까지 받게 되나요? 고통을 "세세토록 ... for ever and ever..." 받는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우상을 섬긴 악한 행위를 한자는 결코 소멸 되지 않고 세세토록 고통을 받습니다. 이 고통을 받는곳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 곧 지옥 (게헤나) 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곧 심판의 하나님이 되심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 장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마태 25:30-33, 41-46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개역성경)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신세계성경) 41그리고 그는 자기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개역성경)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신세계) 46 이들은 영원한 끊어짐*을 당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헬라어 κόλασις 콜라시스 가 벌 punishment 이 아닌 다른 뜻이 있는지요? 각종성경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모든 성경사전은--한군데도 제외없이--벌 punishment로 뜻을 정의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영어 사전을 보십시오. Louw Nida 38.2 κολάζω; κόλασις, εως f: to punish, with the implication of resulting severe suffering—‘to punish, punishment.’ DBL Greek 3136 κόλασις (kolasis), εως (eōs), ἡ (hē): n.fem.; ≡ Str 2851; TDNT 3.816—LN 38.2 punishment (Mt 25:46; 1Jn 4:18+; Mk 3:29 v.r.) EDNT κόλασις, εως, ἡ kolasis punishment, chastisement Greek-English Dict κόλασις , εως f punishment; κ. ἔχω have to do with punishment (1 Jn 4:18) NASB Dictionaries κόλασις kolasis; from 2849; correction:—punishment(2). LEH SXX Lexicon κόλασις,-εως N3F 0-0-7-0-8=15 Jer 18,20; Ez 14,3.4.7; 18,30 chastisement, punishment Wis 11,13; vengeance 3 Mc 1,3; that which brings about punishment, stumbling block, trap Jer 18,20, see also Ez 14,3.4.7, 18,30, 44,12, cpr. Jer 18,22 IGEL κόλᾰσις, εως, ἡ, (κολάζω) chastisement, correction, punishment, Plat., etc. 보시다 싶이 모든 성경사전은 κόλασις 콜라시스의 뜻은 벌 punishment 라고 정의 합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벌과 끊어짐의 뜻은 전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뜻 입니다. Eternal punishment 영벌의 뜻은 벌이 계속 된다는 뜻이지만, eternal cut off 끊어짐은 벌이 끝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어떻게 정 반대의 뜻을 가질수 있습니까? 신약성경에κόλασις 콜라시스는 두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25:46 절과 요한1서 4:18 에 나옵니다. 요한 복음은 어떻게 번역이 되었나요? 요한 1서 4:18 (신세계)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서 완전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 1서 4:18 (개역)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LXX 에는 κόλασις 콜라시스가 모두 15번 나오는데 모두 형벌의 뜻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젠 인터넷에 있는 성경 번역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Bible Gateway 성경 웹싸이트에 영어 성경번역만 50개가 나옵니다 (뒤에 참조). 그런데 50개의 번역중에 한군데도 끊어짐cut off 로 번역한곳은 없습니다. 50개의 영어번역 모두 punishment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50개의 번역은모두 punishment 로 번역을 하였는데 왜 유일하게 신세계 번역만은 “끊어짐”으로 번역하였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와치타워에게만 주신 특별한 깨달음 (또는 계시) 때문에 그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무슨 의도에서 그렇게 번역을 하였을까요? 그게 올바른 번역 일까요? 왜 성경에 나온 그대로의 뜻을 받아 드리지 못할까요? 성경을 믿는 자라면 우리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성경의 그대로의 뜻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사랑이라 사람을 영벌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왜 “끊어짐” 번역 했어어야만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일 eternal punishment 로 번역을 하게 되면 워치타워의 신학과 상충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eternal punishment 로 번역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결과는 게헨나를 죽은 사람이 가는 무덤이 아닌 실질적인 영원한 고통의 장소라고 인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한것 입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한 것 입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하는 것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도 한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자 그대로의 게헨나—eternal punishment—를 인정할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끊어짐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영벌 eternal punishment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벌은 무슨 뜻일까요? 영벌은 영원한 벌이니까 지옥에 없다면 영벌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한 벌이 있다면 반듯이 고통이 끊기지 않는 지옥이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십니다. 죄에 대하여 무서우신 분입니다. 죄를 반듯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무한대로 큽니다. 그렇지요? 동일하게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무한대로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을 죽이기 까지 하였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 아들을 믿지 않는자를 심판하여 영벌을 하십니다. 요 5:27-29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태복음 10:28 마태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 (게헨나) 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을 이해 하려면 10 장 처음 부터 읽어야, 전체 문맥상로 볼때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더욱 이해 하기가 쉽습니다. 10장 1-3 을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십니다. 5-15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십니다. 16절 부터는 전도를 나가게 될때 힘든 핍박을 당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 내가 너희를 이리에게 보내는것 같다. 17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8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갈것이다. 21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식을 대적하여 죽이게 될것이다. 22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것이다. 23 이 동네에게 핍박을 당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26 그러므로, 저희를 두려워 하지 말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러므로, 16-26 절은 이렇게 요약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누가 12:4). 사람들은 너희를 욕할것이다, 가혹하게 채찍할것이다. 감옥에 쳐넣을것이다, 고문할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을 무서워 하지말라. 그들이 오직 할수 있는것은 너희를 죽이는것이다. 그들은 너희를 죽일수는 있지만 거기 까지가 그들의 한계이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제자를 죽일수 있겠지만 그들은 제자들이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제자들이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몸 뿐만 아니라 영혼을 멸하시는 권세가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것 입니다. 26 절과 28 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권세"와 “하나님의 권세”를 비교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권세는 오직 몸만 죽일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몸만 죽일수 있는것이 아니라 영혼도 죽일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를 두려워 할것인가? 예수님은 능히 영혼도 죽여서 지옥에 보낼수 있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이 오더라도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할것은 그들이 설령 몸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들의 한계는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몸 뿐만 아니라 영혼도 멸망게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이야기에 대한 여호와증인의 설명은 대충 이러합니다. 헬라어의 헤이디스 hades는 단순히 무덤을 뜻하는것이고, 죽은자는 부활전까지는 전혀 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여호와증인은 상징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나사로는 ............... 예수님의 제자이고, 부자는 ................... 유대종교 지도자이고, 아브라함은 ........... 여호와 하나님이고, 사람의죽음 ............. 유대교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시작 부자의고통 ............. 사도들의 말씀 증거로 들어난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잘못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저의 의견을 기록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는 크리스찬들도 해석이 둘로 나누어 집니다. 한 부류는 실화를 베이스로 한 이야기라고 하고 또 다른 부류는 증인들 처럼 비유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 약 46번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ALL OF THEM WERE ILLUSTRATIONS BASED ON REAL-LIFE SITUATIONS.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열처녀 비유, 씨의 비유, 땅에 감추인 보화 비유…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하나의 비유도 빼놓지 않고--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이고 보통 일어나는것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이미 그 이야기에 대하여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가지고 있는 공감대를 베이스로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40여개의 비유중에서--다시 말씀드리지만 일상생활에 있지도 않은 허위의 이야기를 만들어 비유로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예외일까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만 일생 생활에 베이스되지 않은 이야기고 나머지 40여개의 모든 비유는 사실을 베이스로 한 비유 일까요?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거짓 이야기 곧 죽음뒤에 있지도 않은 의식 있는 두 사람--부자와 나사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비유는 실지로 있는 일을 비유로 설명한것 입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습니다. 그런데 죽은후에 부자와 나사로 모두 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도 있고 고통이 있는 음부도 있음을 이야기 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바리새인들의 겉으로 나타나는 의와 행실 그리고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해도 죽음이 찾아 오면 모든 것을 영원토록 잃을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절 … 한 부자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 엄청난 부자임을 보여 줍니다. 20절 … 나사로라는 한 거지 …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지만 … 나사로는 입을 옷이 없어 각종 종기로 온 몸이 덮혔습니다. 22-23 … 거지가 죽어 …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죽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호화호식하던 부자도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사람이 죽으면 끝이고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어디에 갔을까요? 부자는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요?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러 아브라함의 품이 들어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갔다고 말씀 합니다. 그러면, 부자는요?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중에…” 다시 말씀 드리자면,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미 알고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사용하여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있는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것 입니다. 23 절 …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음부로 번역된 헬라어 말은 HADES입니다. 이 말의 뜻은 A DARK, OBSUCRE PLACE; THE PLACE WHERE DEPARTED SPIRITS GO, WHERE WICKED SPIRITS GO.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은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낙원에 가고 악한자가 죽으면 음부 HADES 에 간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모든 사람이 이미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새로 만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아브라함의 품과 음부를 설명한 것 입니다. 이미 사람들이 재차 설명이 필요없는 이야기를 통하여 영적 진리를 설명하십니다. 24절 … “…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악인들이 가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자들] 음부는 고통이 있는 곳이라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음부의 개념은 이미 바리새인들도 (유대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궁휼히 여기사…”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이 COMMUNICATE한다고 믿었습니다. 26절 …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아브라함품과 음부는 영원토록 분리되어 있음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비유는 대개 한가지의 진리를 가르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로 아브라함의 품에 (낙원) 에 간다고 자신 있어 했습니다. 그들 생각 같아서는 하나님에게 큰 축복을 받은 큰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당연한 것인데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이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가고 부자는 음부에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비유는 무슨 뜻 입니까? 사람이 낙원에 가는 것은 사람의 의가 아니라—바리새인은 그렇게 믿었습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감을 보여 주는 것 입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사람의 몸을 죽으면 땅에 묻침니다. 그러나, 영혼은 소멸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때에 의인도 부활하고 또한 악인도 부활합니다. 의인은 영생으로 악인은 영벌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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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유성국목사 Archives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