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떠한 영혼도 복음을 듣지 못하여 지옥에 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이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무한하게 더 크다고 믿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본래 크리스천들을 말살하려고 한 자요 살인자였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 오히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을 쓴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을 핍박하고 살인자였던 바울이 변할 수 있었다면 누구든지 예수님 믿고 변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복음 안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을 떠난 사람들의 간증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떠난 이유를 들어보면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을 전도할 때 무엇을 그들과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 기록된 여러 간증들은 유튜브에서 듣고 기록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헤일 크리스토퍼의 어머니는 한 때 여호와의 증인에 헌신적이었고 아버지는 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가 청소년 때 아버지가 여호와의 증인에 헌신하더니 아들에게도 헌신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까지 크리스토퍼는 음악 밴드, 오케스트라, 체스 클럽 등을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모든 세상적인 것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헌신한 후 그의 삶은 지옥과 같이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원치 않았는데 강제적으로 요구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그의 모든 꿈은 사라졌습니다. 30대 중반이 된 크리스토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만 아버지의 강압적인 요구를 떠나 이제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데이브 데이브는 본래 여호와의 증인의 장로로 오랫동안 섬겼습니다. 그러나 2013년 첫 날부터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떠났습니다. 데이브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아버지가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고 곧 이어서 천주교인이었던 어머니도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1975년도에 온다고 해서 데이브의 삼 형제는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남동생이 여호와의 증인을 떠났습니다. 누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였는데 남편이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여호와의 증인 장로로 오랫동안 섬겼지만 자녀들과의 관계는 더욱 힘들었습니다. 데이브의 모든 가족은 데이브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습니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여호와의 증인은 계속 새로운 진리(new truth)를 가르칠까?” 데이브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흔든 “새 진리”는 1914년의 세대가 가기 전에 아마게돈이 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 “새 진리”가 발표 되었습니다. 1914년도의 세대의 정의를 새롭게 바꾼 것입니다. 이 “새 진리”는 더 이상 1914의 세대가 아니고 다른 세대도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젠 더 이상 세대의 정의가 없어졌습니다. 이후 데이브는 “여호와의 증인이 계속 거짓말을 증거하고 있구나.”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나 그녀는 여호와의 증인이 된 후 아주 열심히 섬겼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증인들에게 항상 여호와의 증인에 대하여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전에 발행된 여호와의 증인의 글도 읽지 말고 인터넷에서 찾는 것도 하지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4:1에는 “모든 영을 시험하여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18:22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도나는 진리는 어떠한 시험이나 도전이 와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섬겼던 사람들이 왜 여호와의 증인을 떠날까?”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시작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채널이라면 왜 그 진리가 계속 바뀔까? 그 진리가 계속 바뀐다면 그것이 과연 진리일까?”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기록을 연구하여 보면서 수없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나가 깨달은 것은 이러한 과거의 기록들 때문에 워치타워는 증인들이 예전의 발행된 매거진이나 인터넷을 방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다니엘은 1990년도 중반부터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세상적인 공부는 많이 했지만 성경적인 지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방문한 여호와의 증인은 아주 진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한 것과 진리를 가르치는 것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88%의 증인이었습니다. 워치타워가 가르치는 88%는 믿을 수 있었는데 다른 12%는 의심이 갔습니다. 1914년에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 재림하였다는 가르침, 수혈거부, 투표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국기에 대하여 경례하지 않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깊게 성경을 연구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깊게 연구하면 할수록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워치타워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과 카자 크리스천 카자 부부는 한 달에 70시간 이상 전도하는 파이오니어(전 시간 복음 전파자)였습니다. 스페인어를 하는 나라로 가서 파이오니어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가 있는 동안에 한 형제로부터 워치타워에서 역사적인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중대한 발표가 무엇인가 너무 궁금하여서 구글에서 검색을 하였습니다. www.JWsurvey.com 하는 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남편 크리스천은 구글에서 검색하기 전에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천과 카자가 결혼하려고 할 때 주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반대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곧 아마겟돈이 오는데 결혼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들 부부의 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리더는 자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아주 젊은 아내를 얻어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어려운 문제는 워치타워에서 예언을 여러 번 하였는데 모든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다시 구글에서 검색을 하게 되었는데 워치타워가 지난 10년 동안 유엔의 NGO 멤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부터 크리스천 카자 부부는 더 이상 여호와의 증인으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 미성년과의 섹스 스캔들을 숨겼던 사실도 미디어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칼샤 칼샤는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네 가지의 이유로 워치타워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의 증인은 생일이나 명절 등을 지키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칼샤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다가 증인을 그만 두게 되면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부모님과도 형제들과도 모든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거부합니다. 수혈을 거부하는 많은 여호와의 증인이 그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빌보덴 빌보덴은 어린 시절을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조부모님을 따라서 일주일에 다섯 번씩 왕국회관을 다녔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인 대략 일곱, 여덟 살 때,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여호와의 증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게 된 이유는 여호와의 증인 지도자들이 빌보덴이 알고 있던 가족을 교회에서 쫒아냈기 때문입니다. 빌보덴이 어렸을 때 왕국회관에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하였는데 그에게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여호와의 증인은 1975년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해에 아마겟돈과 지상낙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전에도 워치타워의 예언에 대하여 의심이 있었지만 1976년이 되었을 때는 여호와의 증인이 확실하게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가르치는 것들이 터무니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유투브에 나와 있는 미국 여호와의 증인들이 워치타워에서 나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퍼온 한국 여호와의 증인 세 사람의 탈출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신철수씨의 여호와의 증인 탈출기 1972년 8월 어느 날 “똑 똑 똑...” 제가 대구상고 2학년 재학 중에 어느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75년에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참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만 구원을 받고 지상낙원에 살게 되기에 성경을 공부해야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도자와 더불어 여호와의 증인 진리 책을 6개월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저도 모르게 이 종교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1973년 8월에 정식으로 침례를 받아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워치타워 협회(여호와의 증인 교육기관)에서는 그 당시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군사 훈련(교련)을 해서는 안 된다기에 저는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인 성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중퇴하자 저의 어머니는 “내 아들의 졸업장을 꼭 받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리셨고, 이어서 박해가 심각했기에 전 고향에 있지 못하고 객지인 대구에서 공장에 다니면서 종교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약 3개월 후 저의 부모 형제도 여호와의 증인의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자연스럽게 고향인 성주로 돌아가 종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성주 교회는 어느 가정집에서 시작했으나 저의 열정으로 신자가 많아지자 회관을 얻어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관 운영비용도 제가 노동하여 번 돈으로 충당하기도 하는 등 협회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그 당시 18세에 불과한 저에게 교회 감독자 직책을 주면서 충성을 유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약 3년을 충성스럽고 즐겁게 종교생활을 하였고, 그러다가 개인 사정으로 대구 신암동 교회로 그곳에서 이사가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전 그곳에서도 열심히 전도하였고 교회 생활에서도 남다르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심지어 교회 건축일과 협회 신축공사장에도 봉사하면서 마치 교회일이 곧 나의 일처럼 그렇게 이 종교에 헌신하면서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그동안 10년을 열심히 전도했지만 전도의 효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1982년 5월 9일 “효과적인 전도 봉사”라는 주제로 6개월간 연구한 논문을 써서 협회로 보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논문이 채택되어 전도가 효과가 있어 여호와의 증인 종교가 부흥되길 바랐을 뿐 이였습니다. 이 논문이 협회에 전해지자 대구 대회 회관에서 협회를 대표하는 장로 세 분과 심도 있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토론이 무려 3회에 걸쳐 있었고. 결국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이때 장로들은 “신 형제! 신 형제의 동기와 아이디어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러나 이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알게 되면 그동안 협회의 전도 방식이 잘못됨을 발견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불만이 표출되어 큰 소동이 발생됩니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신 형제를 어쩔 수 없이 제명처분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청춘을 다 바쳐 이 종교에 온갖 방법으로 충성을 다 했건만 온다고 하던 지상 낙원은 고사하고 돌아온 건 제명처분이라니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이 토론 끝에 저는 재명처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 부당하다며 협회에 세 차례나 이의 신청을 했지만 그들은 내게 배교자라는 누명까지 씌어 재명처분을 공식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은 저와 어떤 대화도 금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명되는 그날 교회 바닥에서 온 종일 억울하고 서러워 통곡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종교 단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저를 믿고 이 종교 신자가 된 부모 형제도 제가 사탄 마귀에 씌었다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을 때 그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울면서 지난 날들을 생각하니 마을 곳곳을 다니며 전도하던 것. 학교를 중퇴했다며 삼촌에게 하루 종일 폭행을 당했던 것, 형한테 맞아 코피를 흘렸던 일, 집에서 쫓겨나 잘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했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저는 여호와의 증인에 충성하다 보니 세상 친구도 없었고 유일한 친구란 여호와의 증인들 뿐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져 이제 하늘 아래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 너무 외롭고 슬퍼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억울하였고, 과연 제가 이런 고난을 격어야 하는 큰 죄를 지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벌이도 집어 치우고 이 모든 해답을 하나님에게 직접 얻기 위하여 대구 앞산 공원에 가서 기도로 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기도 하고 성경 읽고, 기도 하고 성경 읽고 이렇게 몇 날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과거를 생각하다가 슬퍼질 때는 실컷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빛이 내려 왔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제명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또 계속 빛이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 빛을 논문으로 작성했습니다. 제목도 붙였습니다. “20세기 여호와의 증인의 보고서”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논문을 통해 속고 있는 우리 여호와의 증인 형제들을 구해 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젊고 미혼이라 영적 사업을 하다가 빈 털털이가 되어도 다시 제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살던 전세방을 털어 여호와의 증인 구제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6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광고를 내고 논문 8,000부를 인쇄를 하여 제가 쓴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읽어 보도록 유도했습니다. 약 200명의 사람으로부터 논문을 보고 싶다는 편지가 와서 저의 논문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때 워치타워 협회도 이 논문을 신청하여 우송했습니다. 그러자 협회는 난리가 났고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이 논문을 읽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속속 탈퇴를 하면서 그동안 속았다고 항의가 대단히 거세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논문을 읽은 서울 노량진 교회 감독자는 집회 도중에 우리가 속았다고 실토하여 그 교회가 나중에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하여 어쩔 줄 모른 한국 협회는 이러다가 이 논문이 전 한국에 신자들이 읽게 되면 하루아침에 여호와의 증인이 무너질 것 같아 이 사태를 수습코자 그해에 이 논문을 영어로 번역 미국 본부로 긴급 보냈습니다. 결국 미국 본부에 있는 17명의 통치체성원(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 최고 책임자들)들도 이 논문을 읽고는 “대항할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85년 5월 전 세계 210개국으로 매월 2회 출판되는 파수대에서 2회 연속 특별 기사화하여 저의 논문을 여호와의 증인에게 읽지 말 것을 강력히 지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그 해 10월 미국 워치타워 협회 본부에서 최고 책임자가 직접 한국에 와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약 일만 명의 신도들과 특별 집회를 가지면서 제 논문을 절대로 보지 말 것을 독려 하였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도대체 어떤 논문이기에 전 세계가 벌벌 떠는지 궁금하다고 했으나 협회에서는 워낙 철저히 제 논문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혈안이 되다 보니 제 논문을 그 당시 여호와의 증인 전부에게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논문을 대구 체육관에서, 대전 충무 체육관에서,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이 종교 집회를 하는 도중에 뿌리고자 시도했지만 몇 부 전하지도 못하고 전부 강탈당하였습니다. 이 강탈에 가담했던 어떤 장로는 우연히 제 논문을 읽고 여호와의 증인에서 탈퇴했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그 당시 제 논문으로 여호와의 증인 종교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기에 협회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역사 120년 동안 전례가 없던 일이라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대구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으나 제 논문을 읽은 어느 독자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사업을 3개월 더 했고, 그 당시 고(故) 탁명환 교수와 더불어 많은 교회에 가서 여호와의 증인의 독성에 대하여 강의를 하면서 여호와의 증인 구제사업을 계속 하였습니다. 약 3개월 후 워치타워 협회를 “국제 종교 범죄 단체”임을 서울 검찰청에 1083명의 동의를 받아 고발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조선일보 1985년 7월 17일). 그리고 1994년에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허구성을 더 많이 깨달아 "워치타워 비밀"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수 년 동안 신문 광고와 인터넷으로 알리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였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저의 논문이 돌아다니는 것을 봤을 때 진실은 승리하고 진실이 살아 있음이 분명하게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언젠가 하늘이 허락한다면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이런 영적 운동을 하여 워치타워 협회에 속고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구해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면 .... 김영희 자매님의 여호와의 증인 탈출기 나는 복음으로 진리를 찾았다. “여호와의 증인” 참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앞세운 종교집단, 한 때는 옳다고 믿고 내 스스로 들어갔건만 지금은 그같이 전무후무하고 전율할 영적 테러 집단을 경험했다는 것이 내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일반인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독초처럼 번져나가는 이념의 사각지대를 탈출해 나온 사람으로서 나같은 잘못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단 '여호와 증인'은 성경을 교묘히 왜곡하여 지어낸 사상이므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주장으로 무장되어 여타의 모든 가치체계를 배격하고, 독선적인 신념이 이데올로기화(化)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오류투성이의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안식교 출판의 신학논문지에 실린 '영혼 불멸'에 관한 기사를 읽고부터였다. "육체의 사망 이후에도 죽지 않고 의식을 지닌 채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비가시적, 비물질적 요소는 있을 수 없다. 즉 육체와 정신을 가진 통일된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람 그 자체가 바로 영혼이다. 이 영혼은 죽을 수 있는 멸성을 가졌지 불멸성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영혼불멸을 부정하는 기사를 읽고 나는 이 사실이 얼마나 단순명쾌하고 이치적인 것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도대체 사람의 사후에도 의식을 지닌 채 존재해서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비가시적인 어떤 실체가 남아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있지도 않은 허깨비 같은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 세상 모든 종교는 다 부정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종교 집단에 속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결국 내가 속할 곳은 “여호와의 증인” 뿐이라고 판단했다. 워치타워협회에 전화를 걸어 증인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책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게 중요했던 영혼 불멸 문제가 이같이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되자 여호와의 증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처음부터 우호적이 되었다. 세상에서 지탄받는 이단종교지만 내게는 그것이 오히려 영웅적으로까지 보였다. 영혼 불멸을 강력하게 부정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과 나는 이미 친구였다. 또한 “폭력과 증오”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총칼을 거부하는 그들을 범세계적 형제애를 가진 종교인으로 여겨졌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 장래의 생명을 기대하는 그들의 종교적 열정에 탄복했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의 그 극심한 박대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도 다니는 열성과 자기 시간을 나누어서 집에까지 찾아와 책자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상에 동화되어 갔다. 그리고 기성교회에 대해 혐오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성경 지식이 전혀 없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구슬 꿰듯이 엮어놓은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어 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고양이 앞의 쥐였던 것이었다. 그들 책자의 논리대로 열심히 배워 이른 결론은 기성교회의 모든 교리와는 정반대 편이었다. 공통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분리되는 극과 극에 이른 것이다. 둘 중 한쪽은 거짓임에 틀림없는데 나는 또 다시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영혼 불멸과 삼위일체라는 두 지주가 확실히 무너졌으므로 다른 모든 점에서도 그들이 옳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기성교회는 거짓말장이요 “여호와의 증인”은 내게 참을 가르쳐준 격이된 것이다. 나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열심히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들를 받아들였다. 배운 것은 소위 말하는 “여호와의 왕국소식” 이라는 것이었다. 즉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나라 곧 왕국(천국)이다. 이 왕국은 실제적인(문자적인) 정부로 지상이 아닌 하늘에 보좌를 두고 있다. 땅의 인간을 다스리므로 천국이라 하며 예수를 수석왕으로 144,000명의 보조왕들이 천년동안 공동통치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왕국정부를 통해서 인간역사 6천년 동안의 온갖 비극이 일소되며 인류는 창세기의 잃어버린 에덴낙원을 계시록의 새 땅으로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역사를 지금껏 수천 년 동안 허락해 오신 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벗어난 인간의 통치가 전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여호와의 시간표에 따라 이렇게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아마겟돈”이라는 전 세계적 전쟁을 통해서 인간의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하늘의 왕국정부를 통한 지상의 낙원을 가져와 여호와의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쏟아 주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이란, 몸이 죽어도 죽지 않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천국에 간다니 그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70-80년 남짓 살 수밖에 없는 몸이 늙지 않고 천년만년 끝없이 살 수 있어야 구원 받는 것이다. 그리고 천년만년 살 것이라면 지금의 인간사 모든 고통, 부조리가 종식된 아름다운 낙원에서 살아야 마땅하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구슬 꿰듯이 엮어 놓은 성경구절의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 때에 소경외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35:5-6)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계 21:4) “불구자가 고침을 받고 노인은 회춘할 것이며 마침내 사망까지도 정복될 것이다. 진찰 한 번 받으려고 종합병원 대합실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원통하게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병으로 사별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시 72: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사 25:6).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사 65:22-23). “제3세계의 기아와 빈곤이 더는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는 고층 아파트에 살지 않고 흙을 밟으며 사람답게 살겠지. 경제학의 암울한 도표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 “낙원이 된 환경에서 풍부한 소산을 즐기는데 범죄가 있겠는가.”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3-5) “아 ! 나는 유토피아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유토피아였다.” “천국정부는 이미 수립되어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마겟돈에서 칼을 휘두르실 때만 남았구나. 1914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죽기 전에 아마겟돈이 온다고 했는데 유토피아 해방의 날도 머지않았구나.” 그런데 여호와의 소식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겟돈에서 모두 죽는다는데... 나는 다급해졌다. 그렇다. 충성스러운 선포자가 되어 이웃의 생명을 구하리라. 그래서 나는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가가호호, 사무실, 상점 등 어디라도 찾아갔다. 주위의 친척, 손님, 잡상인에 이르기까지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붙잡고 여호와의 유토피아를 전했다. 그러나 세상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미치광이로 제쳐 놓은 지 오래됐고 문전박대, 심지어는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소금 뿌리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여호와의 증인을 선포하며 그것이 참 진리라고 잘못된 늪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뱁새가 황새의 뜻을 어떻게 알아주랴, 그래서 좁은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두고 보라. 여호와의 뜻은 아마겟돈에서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하면 전할수록 욕구불만과 의구심이 쌓여갔으니, 그것은 1914년에 예수의 재림으로 천국정부가 하늘에 이미 수립되어 조만간 이 악한 세상이 절단난다는 긴급한 이 소식을 선포하는데 너무나 방법이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파수대) (깰 때이다) 따위를 가지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하는 게 합당한지 의구심이 쌓여 갔다. 여호와의 중인에서는 “man to man”(일대일)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하지만 나는 밀교적인 방법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증인 생활을 하려면 사소한 것까지도 위에서 지시받은 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어째서 그러냐고 질문을 했다가는 불순분자로 지목되어 순종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위협까지 했다. 개성과 상황이 무시된 채 조직에 잘 길들여진 한 톱니바퀴로서 획일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철저히 소외감을 느꼈다. 그즈음 나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정독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많아 동료 증인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그들의 태도에 놀랐다. 내가 성경 말씀에 대해 묻는 것을 싫어했고 조직의 가르침이 성경말씀과 다른 것 같다고 말하면 벌떼처럼 모여들어 감시의 눈초리를 쏘아댔다. 더욱이 신세계역 성경이라는 증인들의 자체 번역본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번역원칙을 일관성 없이 적용시켜 문맥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혼미스러운 곳이 여러 군데 있어 동료 증인 중 성경을 제일 잘 안다는 이에게 아무래도 번역이 잘못 된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나더러 “그러다가는 배교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바로 이 한마디가 내 가슴에 불을 질렀다. 사랑의 하나님, 그 분은 진실을 알고자하는 사람에게 이다지도 강압적으로 나올 수 있는가. 나는 그날로 문제 삼지 않고 접어둔 교리들로부터 시작해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서 교육받아온 모든 교리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교리만 올바르다면 압박과 설움을 당해도 조직에 남아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문제로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말세에 돌입했다는 1914년의 연대 산출이 성경에 정당한 근거를 두지 않은 전혀 엉터리였다는 데서 여호와의 증인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경악했다. 심지어 수혈 거부조차 성경을 터무니없이 곡해한 교리였다. 이로 인해 생사람 잡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여태까지 가방 들고, 침 튀겨가며, 이런 새빨간 가짜로 하나님 말씀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여호와의 피조물로서 지상에 오시기전 하늘의 미가엘 천사장이었던 분이 아니라 내 입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할, 바로 나의 하나님여호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온 세상 죄를 지신 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확실히 알았을 때 그 감격을 수용하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나도 벅찼다. 그런데도 저들은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폐하기 위해 자기들의 날조성경에다가 말뚝까지 그려가면서 소위 에덴낙원에서 아담이 잃어버렸던 생명을 되찾아 지상에서 복을 누린다는 가짜를 만들어 놓았으니 저들은 종교 사기꾼이요, 자기를 피로 사신 주를 부인하는 문자 그대로의 “적그리스도인” 이였던 것이다. 유인술 씨의 워치타워 탈퇴서 성명: 유인술[“40년 여호와의 증인, 질문 15개” 책의 저자] 침례일: 1974년 7월 30일 상기 본인은 자신과 자녀들의 영육 간에 건강 문제에 책임을 지고 더 이상 여호와 증인 생활을 이중적으로 할 수 없으며 여호와의 증인 역사 140년간 예언한 것은 연대별로 단 한 건도 성취된 것이 없기에 탈퇴하고자 합니다. 탈퇴이유: 신명기 18: 20-22 신명기 18:20-22(개역) “20.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1. 아마겟돈이 온다는 이유에서 성서를 공부하여 침례를 받았으나 한세대 교리가 너무 자주 변경되는 것에 실망했고, 더 이상 그것에 기대를 할 수 없게 되었음(2013년 7월 15일호 연구기사 파수대 큰 환난 세대 참조.). 2. 성령으로 임명되었다고 수십 년 장로직을 수행해 왔으나 인간 순회 감독자가 앞으로 임명 해임도 할 수 있다는 편지 낭독을 듣고 그동안 임명도 과연 성령의 임명(통치제)였는가?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장로직 약 25년 주임직 15년). 3. 외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 것을 유학 중인 자녀를 만나기 위해 위장 방문하였다고 순회 감독자에게 고발하여 특별 장로 모임을 통해 나에 대한 해임을 운운했을 때 순회 감독자와 전체 장로회 모임에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항의하며 자녀 교육은 환경과 실력이 되면 보내는 것이 부모의 권리요 의무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고등교육은 사단마귀의 유혹이 될 수도 있다”고 지난 순회 대회에서 이 문제를 세미나 주제로 다루었다고 하면서 나의 항의와 반론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해임이 창피해서 신병문제로 사임하겠다고 사임서를 제출하였다. 배움은 종교에서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지금도 나의 소신이다. 4. 아직도 건강 문제가 심각하다(어지러움, 두통, 두증). 치료와 입원을 번복하고 있다. 야외봉사를 1시간도 할 수 없다. 5. 본인은 탈퇴와 동시에 여호와의 증인 어느 누구와도 전화나 연락, 면담을 일절 사절하며 가족의 어떠한 과장된 음모도 답변을 거절하며 스스로 결정하여 처리하기 바란다. 6. 내 마음은 창조주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탈퇴 후에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성서의 진리와 도덕성과 지침을 생활화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것이며 창조주에게 불명예를 돌리지 않을 것이니 부탁은 배교자로 취급 발표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2014년 7월 13일 “워치타위 비밀”의 저자 신철수씨의 이야기입니다. 마치는 말씀 여호와의 증인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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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유성국 목사 ArchivesCategories |